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쉽고 편한 공간

강의식 수업의 한계 본문

시사

강의식 수업의 한계

evera_fter 2021. 7. 22. 19:21

 '21 7월 21일, 국민의 힘 정책 공모전이 마감되었다. 군 복무중인 관계로 이런 저런 활동에 제약이 아쉬워하던 찰나, 정책 공모전은 조금 욕심을 가지고 참가를 결심했었다. 평소 조각처럼 조금씩 떠올리던 생각들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이것들을 잘 정리할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주젯거리는 참 많았으나 이를 '정책'이라는 틀 안에 잘 집어넣기 위해선 넓은 시야와 깊은 안목이 필요했다. 때문에 정치, 외교, 경제 등의 분야에 있어서는 아직 '정책'으로 구체화 할 만큼 뚜렷한 견해가 내게 없었기에 역시 내가 가장 관심이 많은 '교육' 분야로 정책을 구상해보기로 했다. 

 '교육'분야로 범위를 좁혔음에도 머릿속에 나도는 생각들이 질서없이 분주했다. 정책제안서에는 1500자의 글자수 제한이 있고, 심사위원 입장에선 적어도 수백장의 정책 제안서를 보게 될 것이다. 정책은 방향과 의도가 명확하고 방식이 참신하고 군더더기 없어야 했다. 교육에 있어 내가 생각하는 가장 급한 화두는 역시 '사교육 과열' 및 '고등 공교육과 대학 교육과의 괴리'이다. 이 화두의 기저에는 '학벌을 통해 안정된 직장을 심하게 갈구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 분위기'라는 큰 문제가 있으나, 역시 한 발자국 물러나 조금씩 화재를 진압해 가야 한다. 내가 먼저 꺼야겠다고 생각한 불은 '강의식 수업의 한계' 이었다. 

 


 

 교육청, 과학고 영재교육원부터 영재학교, 명문대 수업까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교육을 받아왔다. 소문이 자자한 대치동의 1타 강사부터, 유명 교수의 명강까지 수업을 들으며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 '강의식'으로는 분명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중학교때 다닌 학원에 한 수학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수업시간이 되자 교실에 헐레벌떡 들어오시면서 신나는 표정으로 바로 칠판에 문제를 하나 적으셨다. 자기가 어제 풀다가 막힌 문제인데, 같이 풀어봤으면 해서 수업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문제를 소개한 것이다. 보통 이런날에는 2시간이고 4시간이고 그 한문제를 모두가 같이 토론하며 풀다 집에 가곤 했다. 그리고 난 집에서 혼자 그 문제를 밤새 고민했다. 그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우리와 함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만 했다. 나에게 무언가 가르치진 않았다. 다만, 그 문제를 푼다는 것에 대한 흥미, 욕심, 열정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 분에게 배운 수학은 내 뿌리가 되어 고등학교를 거쳐 지금까지 내 수학실력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수업'이란 것의 형태는 점점 후퇴하고 있다. 분명 기술이 발달하고 지식이 확장되어가는데, 교실의 풍경은 그대로다. 교육과정은 개정되는데, 학생들은 여전히 책상에 앉아 책만 바라본다. 그 누구도 그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고 틀 안에서 책에 적힌 내용만을 고치려 든다. 2022 개정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였다. AI/SW교육의 강화를 외치는데, 고작 융합선택 교과목이 하나 생긴 것 외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과목이 하나 늘은 것 뿐이다. 그 과목의 교과서를 펼치냐, 안 펼치냐의 차이인 것이다. 

 

 영재학교는 교육부 교육과정과 별개로 자체적인 교육과정 편성이 가능해 실험적인 수업 구성이 가능했다. 때문에 참 다양한 수업 형태를 경험했는데, 그 중 가장 '바람직했다'고 생각하는 수업 몇 개를 열거해보겠다. 


1. 생물학 실험(1학년)

2. 미술(1학년)

3. 정치 경제(2학년)

4. 미적분학2(3학년)

5. 천체 관측의 기초(3학년)

 

 놀랍게도 4번 미적분학2 과목을 제외하면 모두 교과서 없이 진행되는 수업이다. 생물학 실험에서는 수업마다 선생님께서 실제 우리가 진행해볼 수 있는 스케일의 맞춤형 실험을 준비해주셨다. 미술 수업에서는 드로잉, 가죽공예, 레이저 커팅, 은반지 공예 등 마찬가지로 100% 우리가 직접 참여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정치 경제 수업은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선행 학습한 후 토론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선생님이 강의하는 시간은 수업당 5분을 넘지 않았다. 천체 관측의 기초는 실제 학교 옥상의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며 수업이 진행됐다. 마찬가지로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시간은 아예 없을때가 더 많았다. 미적분학2는 어쩔 수 없이 강의의 비중이 더 클 수 밖에 없었으나 역시 필요한 내용만 강의한 후 나머지 시간은 모두 학생들의 문제 풀이 및 발표시간으로 채워졌다. 

 

 위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결론은 자명하다. '수업'은 '강의식'이 아닐 때 더욱 바람직하다. '강의'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앗아간다. 칠판을 보고, 노트에 베끼느라 바쁠 뿐 실제 그 내용에 대해 내면화는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 수업 내용에 대해 내면화가 최대한으로 이루어지고, 그에 대해 2차적인 반응으로써 질문, 추가 학습 등이 이루어지는 수업이 바람직하다. 통상의 '수업을 잘한다', '설명을 잘한다' 등은 이 '내면화'의 시간을 빠르게 단축해주는 것일 뿐 실제 수업의 질은 그 이후 과정으로부터 결정된다. '학원가'는 '그 이후'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강의'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학원가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 '강의'조차 제대로 못하는 공교육의 적나라한 현실 때문이다. 때문에 공교육은 '그 이후'에 무언가를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몇몇 '대학'에서는 '그 이후'를 통해 얻어지는 역량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서울대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업 역량'이다. 지식은 자기주도적으로 추구되고, 학습되어야 한다. 단순히 주입되는 지식만 잘 받아먹기 보다, 주어진 지식을 내면화 하고 다음 단계의 지식을 찾아 추구하고, 흡수할 줄 아는 인재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량은 실제로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 교수의 강의는 더욱 불친절해지고, 수업을 넘어서 연구를 하기 위해 스스로 지식을 답습하는 역량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교육은 이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저 '고3'이라는 한 순간에 학생들이 '수능'이란 기준선 위에서 가장 뛰어나길 원할 뿐, 이들이 과연 어떤 역량을 지니고 공부를 하는지 보지 않는다. 교육을 받는 학생들 또한 이를 인지할리 만무하다. 8살부터 19살까지 10년간 획일화된 공부 방식을 세뇌받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변화해야 한다. 모든 학생이 영재학교의 교육과정을 받아야 한다-라고 진지하게 생각한 지 2년, 고교 학점제는 겨우 그 시작일 뿐이다. 수업의 내용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이제 수업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 


 대충 위와 같은 배경의 동기로부터 글을 써서 정책 공모전에 참가했었다. 정책 내용은 아직 대회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서둘러 밝히지 않겠다. 공모전이 엄청난 인기 속에 경쟁률이 70:1을 웃도는 모양이라 선발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지도부에 무언가 영감을 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생각한다. 이준석 당 대표의 말로는 엄청난 아이디어의 정책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매우 기대된다. 한편으론, 나보다 경험, 지식, 안목, 시야 모든 분야에서 훨씬 뛰어난 대한민국의 숨은 기둥들이 참 많은데, 이제야 이런 대국민성 정치 이벤트가 열리는 것인지 안탑깝기도 하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