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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훈소, 종군교에서의 2달을 마치며 본문
2021년 4월 12일 논산 육군훈련소 입소 후 2달 뒤 6월 10일 자대를 배치받았다. 5주를 육군 훈련소에서, 3주를 육군종합군수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징집으로 가서 K55계열 자주포 정비 특기를 부여받아 예정에 없던 후반기 교육을 받게되었다. 자대배치를 받기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달을 보냈다. 참 새롭고 다양한 경험들을 했고 느낀 바도 많았으나 아쉽게도 군 보안규정에 의해 구체적인 사항은 블로그에 기재할 수 없다. 때문에 단편적인 느낌이나 감상들을 간단하게만 기록해두려 한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육군훈련소에 입소 후 바로 2주간 격리생활에 들어갔다. 3일만에 첫 세면과 양치가 가능했고, 샤워는 8일차부터 가능했다. 침상에 가만히 앉은 채 1분 1초를 헤아렸다.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피로가 겹쳐 매우 힘들었다. 본격적인 훈련은 3주차부터 진행됐다. 제식, 화생방, 사격, 구급법, 수류탄, 각재전투 등 누구나 아는 그런 훈련들을 똑같이 받았다. 4~5월의 날씨가 아침에는 춥고 낮에는 매우 더웠다. 여름에 훈련소 오면 절대 안되겠다 싶었다. 훈련 강도 자체는 견딜만 했으나 수백명의 훈련병들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비효율적인 시간 소모가 많았다. '힘들다' 보단 '귀찮다'가 많았다. 더불어 생활관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규제도 답답했다. 5m거리에 있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도 2~3명의 전우와 같이 생활관을 나서야 했다. 정말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통제당했고, 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각개전투 주간은 소문대로 혹독했다. 하루종일 쉴틈 없이 훈련받고 움직였다. 이때 논산에는 폭우가 내려 연병장이 모두 진흙밭이 되었었다. 그 진흙밭을 하루종일 기어다니며 포복훈련을 했다. 다음날에는 귀신같이 날이 개고 폭염이 일었다. 땡볕에 여지없이 사로를 굴렀다. 날이 너무 더워 숙영과 종합각개전투 훈련은 생략되었고, 다음날 새벽 4시에 마지막 훈련인 행군을 시작했다. 총 20km을 16kg군장을 메고 걸었다. '진짜 죽겠다' 정도는 아니고 '죽을만큼 힘들다' 정도였다. 그래도 모든 훈련을 끝내니 뿌듯했다. 생활관에 참 좋은 동기들이 많아 좋았다. 몇 명을 제외하곤 전부 동생들이었는데 고맙게도 형대접을 잘 해주었다. 지금도 연락중인데, 훗날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자대배치가 나오는 날, 난데없이 자주포정비 특기를 부여받았다. 전기과여서 이쪽으로 온 것 같았다. 육군 종합군수학교에서의 3주는 훈련소보다는 훨씬 나았다. 더 많은 자유가 부여되었고, 훈련이라기 보다 교육으로 일과가 진행되었다. 3주 동안 자주포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 세부 교육내용은 보안상 생략하겠다. 교관님이 재밌게 잘 가르쳐주셔서 공부에도 큰 부담은 없었다. 마지막 평가가 있었는데, 순위권에 들어 성적 우수상도 받았다. 3주 동안 TV로 펜트하우스를 정주행했는데 그렇게 드라마를 많이 본건 처음이었다. 침상에 누워서 동기들과 같이 보는 맛이 있는 것 같다. 논산 훈련소에서와는 다르게 육체적 훈련이 없고, 훨씬 편한 생활이 가능했다. 3주라는 시간도 비교적 빨리 흘렀고, 동기들끼리만 생활하기에 스트레스도 훨씬 적었다.
진짜 자대배치가 나오고 마침내 6월 10일 전입하였다. 아직도 입소하던 그날이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눈 딱 감고 뜨니 오늘이다. 남은 군생활도 이랬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덕에 단체생활이 불편하진 않았으나 군 예절, 제식 등 적응해야 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수 많은 불합리한 시스템이 5분마다 1개씩 눈에 띄었지만 굳이 머릿속으로 가늠하진 않았다. 하나씩 인식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쌓이고 나만 손해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걸 '그런갑다'하고 흘러 넘겼다. '뇌를 비웠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인터넷 편지도 많이 왔다. 훈련소에 있으니 인편이 정말 간절했다. 많이 올거라 기대 안했는데 어림잡아 100장쯤 왔다. 내가 참 좋은 친구들을 두었음을 새삼 알 수 있었다. 몇몇 편지는 정말 큰 힘이 되어 훈련소 생활을 견디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편지도 많이 써보냈다. 참 오랜만에 써보는 손편지였다. 몇 안되는 훈련소에서의 좋은 경험이다.
휴대폰과 인터넷에서 분리된 생활을 하다보니 평소보다 사색에 많이 잠기게 되었다. 훈련소에서는 바깥에서의 생활과 추억을 많이 떠올렸다. 편지를 보내준 친구들 한명 한명과의 지난 추억들도 되짚어보았다. 어린이부터 중학생, 고등학생을 거쳐 대학생이 된 나의 인생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본성이 무엇이고 지금 내가 어떤 생각과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 떠올렸다. 책도 몇 권 읽었다. 육군 종합 군수학교에서는 심적 여유가 되어 짧은 글을 몇 편 썼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조금 다듬어 노트 한페이지 분량의 주제 글쓰기를 했다. 12편 정도 되는데, 좀 더 살을 붙여 잘 정돈된 것은 블로그에 올릴 계획이다.
먼저 입대한 친구들 모두 훈련소를 거치고 꽤나 무던하게 연락을 해 와서 훈련소가 그렇게 고된 곳인지는 잘 몰랐었다. 그러나 직접 겪고 나니 다들 말을 하지 않을뿐 모두 힘든 훈련을 거쳤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 보다 일찍 입대하신,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군 장병 선배님들 또한 더욱 힘든 군생활을 겪었고,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신 그분들 덕에 우리나라가 유지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군대란 흔히들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그 본질속에 자신의 청춘을 바쳐 묵묵히 책무를 다하는 모든 이들에게만큼은 무조건적인 존경을 보낸다.
훈련소에서는 쓸 말 이 참 많겠다 싶었는데 막상 지금이 되니 글이 매끄럽게 써지진 않는다. 군생활동안 자주는 아니지만 1달에 1개꼴로 생존신고 격으로 글을 써 볼 생각이다. 혹 그 글을 따라가다 보면 군 생활동안 변화하는 나의 생각을 관찰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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