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있어 대한민국의 책임이란
대선 유세가 한창이다. '단일화는 없다'고 선언한 화제의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는 한 인터뷰에서 '시그니쳐 공약이 뭐냐'라는 질문에 주저없이 '교육'이라 답했다. 내 블로그 글을 보면 알 수 있듯, 난 분야와 수준을 막론하고 교육제도에 관심이 많으며, 국가의 한 세대의 운명이 그 시대의 교육이념에 좌우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때문에 이번 이준석 후보의 이른바 '수학교육책임제'를 중심으로, 그의 교육 정책 철학에 대한 내 사견을 간단히 피력해보고자 한다.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박근혜 키즈'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 이준석 후보는 저소득층 대상 수학 교육봉사 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의 대표였다. 서울과학고 - 하버드 출신의 엘리트, 심지어 보수계 인사가 이러한 배경을 가졌다는 것에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그 족적을 따라 나 역시 배나사에서 6개월간 수학 교사로 활동했다.
당시 배나사에는 특이한 철학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정해진 할당량의 문제를 학생들이 전부 풀때까지 몇 시간이고 같이 남아있어 주는 것이었다. 누가 시작한 것인지 모를 이 암묵적인 회칙은 실제로는 지켜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그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제한된 시간일지언정 능력껏 열심히 가르쳤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책임지는 마음이었다.
최근 이 후보의 인터뷰를 다시 보고 이 철학이 그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수학 중도 포기자가 나오지 않도록, 지나친 과정일 지라도 다시 차근차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수학교육책임제' - 정책의 평가를 떠나, 이 후보가 교육에 대해 얼마나 확고한,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후보의 다른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제가 가르쳐본 어느 학생도, 수학을 포함해서 어떤 과목도,
공부 잘하고 싶지 않은 학생이 없었습니다.
진정한 낙인이란
근 몇 년간 고교 수학 과정이 꾸준히 축소된 배경에는 '사교육 없는 세상'이란 단체를 비롯, '교육 과정이 비대한 것이 사교육 과열의 원인이다' 란 담론을 내세우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이는 굉장히 속 편한 해석이다. 대한민국에서 학벌주의가 없어지지 않는 한 사교육이 사라지진 않으며, 사람의 다양한 진로와 전문성을 존중하는 사회기조가 형성되지 않는 한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후보와 한국교총 대표와의 대담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소개된다. 한 학교에서 기초학력 미달자에 대한 방학 보충수업을 실시하는데, 이전에는 수업에 출석하지 않는 아이의 학부모에게 연락했을 때 잘 챙겨 보내겠다는 답변이 오던 반면, 최근에는 애가 안하겠다면 냅두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한국교총 회장은 이에 대해 이 아이를 당장 편하게 놓아줄 순 있겠지만, 이대로 사회에 내보냈을 때 받을 대우를 생각하면 책임을 느낀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낙인찍기 효과에 대한 우려로 일제고사(一齊考査) 형태의 학력 진단이 어려워진 현재, 그 학생들이 사회에서 더 큰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것을 이 후보는 지적한다.
어려운 이야기다. 줄세우기는 누군가에겐 큰 성취감과 동기부여로 다가오는 반면, 누군가에겐 일찍이 패배감과 낙오자를 경험하는 계기가 된다. 강한 학구열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지만, 그만큼 학생은 학업 스트레스로 불행해진다. 학생들로 하여금 더 즐겁게, 더 많이 공부하게 만드는 마법같은 해답은 당장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학습의 의지를 가진 학생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패권은 결국 사람이 쥔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AI를 중심으로한 국제 기술 패권 경쟁에서 대한민국은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 최근 'DeepSeek' 파동에 수천조 규모의 주식시장이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 각 정당과 후보들이 나름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혹자는 GPU 5만개를 공급하고, 한국형 엔비디아와 K-GPT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것들은 정책이 아니다. 이것들은 수 많은 정책과 시간, 자원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할 '결과'다. 이 결과들을 이루기 위해 정말 필요한 중간 과정을 명확히 그려내고, 그것들을 정책화해야 한다. 즉, GPU 5만개를 생산하고 관리할 만한 인프라와 재원, 그리고 이를 100% 활용할 수 있는 인재와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 기반이 마련된다면 한국형 엔비디아와 K-GPT는 자연히 따라오는 결과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최근 한국인 학부생 2명으로 구성된 'nari-labs'에서 출시한 TTS 모델 'dia'가 일주일만에 github star 10k를 달성하고, huggingface trending #1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순위권에 있던 모델은 'nvidia', 'microsoft', 'google' 등의 빅테크에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사건은 오히려 해외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 학부생들이 대단한 sponsorship이나 기술 지원을 받았는가 하면 전혀 아니다. 대한민국은 여기에 크게 공이 없다. GPU도 google의 TPU 지원 프로그램 덕을 보았고, 공부는 해외의 논문과 해외 기업의 오픈소스를 활용했다. 보태준게 있는가 하면 학부생 1명은 군대에 가있다는 점 정도다.
누군가 GPU 5만개 지원이라는 동떨어진 정책을 이야기 할때, 면목없게도 우수한 한국의 인재들은 알아서 빅테크를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준다.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은 인재 육성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다.
AI 교육이란
갑자기 AI 패권을 왜 이야기했는가 하면, 그래서 결국 AI 인재 육성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특히 타 정당의 AI 교육 정책에 대해 '의미를 모르겠다'고 비판하며, 수학을 포함한 기초 이공계 과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비단 AI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이공계 분야가 붐이 일더라도 수학에 대한 중요성은 퇴색되지 않으며, 이 지식에 대한 선후 관계가 뒤집힐 일은 적어도 수십년간 없다.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적부터 빅데이터와 AI에 관심을 가지고 독학을 했었는데, 매번 부딪히는 벽이 바로 선형대수와 벡터 미적분학이었다. 아무리 정규 교육과정을 앞질러 먼저 배우려고 해도 수학적 베이스가 받쳐주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딥러닝의 기본을 안 것은 대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다.
AI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접한 지식을 일찍이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그리 급할 게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공계 학생으로서 응당 습득하는 미적분학 지식으로도 AI 이론을 후에 배워나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으며, 전공자가 아니라면 AI를 이해하는데 그리 많은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주변의 우수한 AI 전공자들은 특별한 AI 교육을 따로 받은게 아니다. 그들은 그 어떤 어려운 전공과목도 성실히 답습해나가던 인재들이었다. 그 인재들이 현 시대의 트렌드인 AI를 선택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