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행복이란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친누나가 병원에서 성인 ADHD 판정을 받았다. 이번 휴가 때 만난 친구도 ADHD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자기가 ADHD가 아닐까 하며 걱정했다. 후천적으로 생기는 병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괜스레, 새삼, 사회를 또 한 번 탓하게 된다.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정신 건강은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 원인은 여러가지다. 복잡해진 현대사회, 무한 경쟁시대, 첨예해진 인간관계, 심화된 사회문제 등 꼽으라면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 열심히 헤엄치고 저마다의 행복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새삼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반복할 생각은 없다. 행복은 상대적이라던가,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껴야 한다던가, 따위의 이야기 말이다.
나는 '절대적인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구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생물이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나름 지구에서 나고 자라는데 가장 최적화된 생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광활한 자연, 예컨대 별이 수 놓인 밤이나 멋들어진 산맥, 빛이 부서지는 바닷가를 보고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것 또한 생존 전략 중 하나일까? 적어도, 자연을 보고 시도 때도 없이 기분이 나빠지고 스트레스받는 종보다는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결론은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진화한 생물이다.
말장난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해보자. '행복은 상대적이다'란 말이 있기 이전에, 우리 인간이 무조건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넘쳐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왜 우리는 그토록 행복해지지 못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이 행복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충분히 기뻐하고, 행복해질만한 일이 있더라도 본인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허락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현대인들은 이 기준이 너무 높다. 혹 행복을 느끼더라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그 가치를 깎아낸다.
그럼 왜 현대인들은 그 가치를 깎아내는 데 익숙해졌을까. 몇 가지 예를 들자. 받아쓰기 시험에서 60점이라는 평소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어린이가 있다. 본인은 기쁘지만, 부모님은 80점보다 아래인 점수에 만족스럽지 못해 아이를 혼내킨다. 아이는 그 이후로 80점 아래의 점수를 받을 경우 온전히 기뻐할 수 없게 됐다. 열심히 공부해 마침내 목표한 대학에 합격한 고등학생이 있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진 대학이 아니라 자랑하기에 부끄러워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고시생이 잠시 흡연을 하러 건물 옥상으로 올랐다. 때마침 별이 수놓은 밤하늘이 예쁘게 펼쳐졌다. 그러나 이 고시생은 월세를 대주시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아름다운 밤하늘이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결국 또 사회 탓이다. 정확히는 특유의 '사회 분위기'이다. 그 기저에는 '남 잘 되는 꼴 못 보는',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등의 꼴사나우면서도 모두의 내면에 담겨있는 인간의 이기적인 습성이 있다. 난 이 습성이 한국 사회에 특히 더 만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조금 더 큰 주제에서 다시 다룰 예정이므로 마무리 짓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시발점이 된 군대에서 후반기 교육 기간에 자필로 쓴 짧은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넘치는 행복
'행복은 상대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불행은 남과 비교하면서부터 시작된다'라는 말도 있다. 이 말들도 분명 일리가 있고 맞는 말들이지만 이 글에서는 '절대적인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현대사회는 매우 바쁘다.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아침일찍 일어나 일을 하고, 10시간 뒤에야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삶과 옷, 음식을 잃고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오늘날 우리들은 행복한가? 본인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행한 곳에 와 있다. 육군훈련소에서의 5주는 참 끔찍했다. 첫 격리 2주는 세면과 샤워, 화장실 이용과 생활관 밖 이동이 제한된 채 감금되다시피 했다. 이후 3주는 매일 고된 훈련을 받았다. 가끔 식사 후 주어지는 짧은 휴식시간이 유일하게 내가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때였다. 어느 날, 훈련소 생활관에서 내 침대위에 앉아 매우 우울해하고 있을 때였다. 저녁에 해가 맑고도 진한 노을빛을 발산하며 지고 있었다. 그 황금색 빛이 창을 뚫고 내 침대에 내려앉았다. 그 빛을 본 순간 나는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사랑하는 이와 친구들이 내 곁을 지키고, 모든 고뇌와 고민이 한순간에 날아가며, 오직 기분 좋은 햇살만이 내 정신을 홀린 것 같았다. 그 날, 다시금 깨달았다. 인간이 행복해지는 데 많은 것이 필요 없다. 푸르른 하늘과 맑은 날씨, 황금빛 노을, 별이 수놓은 밤하늘, 장대한 초원, 웅장한 산맥. 그저 자연을 느끼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다. 그저 그 행복을 받아들일 자격을 스스로 허락하면 되는 것이다.